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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 이만유 위원장, "실제적 아리랑고개는 문경새재"인류무형문화유산 '문경새재아리랑'을 보급, 전승하는 것을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위원장 이만유)에서는 문경시의 지원을 받아 '아리랑도시 문경'의 정체성과 위상 확립 및 '문경새재아리랑'의 저변 확대와 대중화에 기여하기 위해 '2021 찾아가는 아리랑학교'를 개설, 운영하고 있다. 지난 코로나 기간에서는 방역상 실내가 아닌 야외에서 방역지침을 지키며 문경을 찾아온 관광객들에게 문경새재아리랑 알리기와 아직 문경새재아리랑을 제대로 알고 부르지 못하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아리랑학교'를 시행해 오고 있다. 문경새재아리랑이 근대 아리랑의 시원이라는 사실과 아리랑사에서의 위상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전승, 보급하지 못하였고 정선아리랑,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에 비교해 전 국민은 물론 시민들에게도 인지도가 낮은 상황이다. 특히 지난 2020년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가 만들어(작사, 작곡) 발표한 ‘코로나아리랑’을 함께 교육하고 불러온 아리랑으로써 코로나19의 방역을 계도하고 코로나를 극복할 수 있게 노력했다는 점은 주목해야 한다. Q: 지난 해를 회고하신다면? A: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가 2017년 창립된 이후 꾸준히 참여하고 추진해 온 ‘찾아가는 아리랑학교’를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관광지 1위 ‘문경새재' 등 유명 관광지에서 개최하여 총 5회에 걸쳐 921명이 함께 전통 춤사위와 함께 아리랑을 불렀습니다. 참석자들은 단순 관광객을 넘어 ‘문경새재아리랑’을 전파 확산하는 전도사이면서 아리랑홍보대사로서 역할을 하게 한 것입니다. 특히 지난해 세 번째 ‘찾아가는 아리랑학교’ 프로그램을 사할린동포와 함께 한 것입니다. 사할린 귀국 동포 100여 명이 새 둥지를 틀어 살고 계시는 경기도 양주시 율정마을을 찾아가 디아스포라(이산)의 아픔을 아리랑으로 풀어내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난 연말에 (주)국악신문이 주관하여 추진한 ‘사할린 동포 청소년 장학금 지원사업’에 우리가 작지만 100만 원을 후원하여 아도위 42명 모두 뜨거운 동포애를 나눈 기억입니다. 사할린에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조선인 중 68 퍼센트가 경상도 사람이라는 것을 듣고 너무나 가슴이 아펐습니다. 처음 만나서 손잡고 아리랑을 부르면서 가슴이 벅차 올랐습니다. 아리랑으로 70년 동안 겪으신 이산의 아픔이 치유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날 함께한 행사가 사할린 새고려신문에 기사가 2번이나 나간 것을 받아 보고 진정한 동포애를 느꼈습니다. Q: 시민위원회의 활동 목표는? A: 궁극적인 목적은 같지만. 기존하는 각 지역의 ‘아리랑보존회’와는 조금 다른 성격을 지닌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는 아리랑의 주인이며, 아리랑을 향유하는 주체(민초, 백성, 국민)인 순수 민간인들로 구성된 국내 유일 자발적 전승단체입니다. ‘문경새재아리랑’은 역사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고, 많은 아리랑에 영향을 주고 여러 아리랑을 파생시켰으면서도 정선, 진도, 밀양 등 유명 아리랑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2012. 12. 05.),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29호 지정(2015. 09. 22.),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문경, 세상의 모든 아리랑을 품다”라는 주제로 ‘아리랑 도시 문경’을 선포함(2015. 12. 13.)에 이르러게 됨에 이에 호응하여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2017. 06. 29)를 창립하여 아리랑에 대한 조사, 연구, 발굴, 보존, 전승, 보급에 역점을 두고 교육과 공연, 아리랑 관련 콘텐츠 개발, 학술발표회 등에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시민위원회의 활동 목표는 모든 아리랑을 품으면서 ‘근대 아리랑의 시원’이라 할 수 있는 ‘문경새재아리랑’을 대한민국 5천만 국민이 모두 알고 즐겨 부를 수 있도록 하며, 아리랑고개가 우리 민족의 심성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문경새재’가 ‘아리랑고개’임을 인식하게 하여 ‘아리랑의 성지, 문경새재’가 될 때까지 진력할 것이며 그 상징으로 꺼지지 않는 ‘아리랑의 불꽃’이 영원히 타오르도록 할 것입니다. Q: 문경시 보호문화유산 문경새재아리랑 제정 이후의 변화와 기대는? A: 2022년 ‘문경새재아리랑(송옥자)’이 ‘문경시보호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아리랑도시 문경’의 위상을 높이는 일이고 환영합니다. 아직은 보호문화유산 지정 이전이나 이후의 변화는 희박합니다. 한가지 바램은 전수자, 이수자 등은 문경지역에 뿌리를 둔 문경지역 정서를 지닌 사람이 선정되어 토속민요의 전통성을 이어갔으면 합니다. Q: 문경새재아리랑축제의 2년 연속 휴면 상태에 대해? 타개책은 무엇인가요? A: 우선 선결과제로 ‘대동, 상생, 저항’이라는 아리랑 3대정신을 망각하고 아리랑이란 이름 앞에 아리랑을 욕되게 하고 아리랑 관련인들의 상호 화합을 저해하고 분쟁과 편 가르기를 일삼는 사람이 아리랑을 주무르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또 내외부 인사들이 그런 류의 사람과 뇌동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며 지역 내 아리랑 관련인 모두 하나 되길 기원해 봅니다. 문경시는 2015년 ‘아리랑도시 문경’을 선포하는 등 적극적인 사업을 추진하여 다소 성과를 내었지만, 아직도 관에서는 제한적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아도위는 문경시 일원 중 유명 관광지, 휴식처 등 시민, 관광객이 즐겨 찾는 곳으로 직접 찾아가서 문경새새아리랑 이론 교육과 노래 교습, 다듬이 체험 등으로 누구나 직접 참여하고 부를 수 있는 마당을 펼쳐 문경새재아리랑을 보급하고 있다. ‘문경새재아리랑축제’가 2년 연속 개최되지 못함의 원인과 대책은 이렇습니다. 첫째, 내분, 편 가르기, 내 아니면 안 된다는 잘못된 우월 의식, 분쟁 조성자의 망동입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아리랑 관련인들의‘대동, 상생, 저항’이란 아리랑 정신의 회복과 의식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둘째, 관련 기관과 리더가 아리랑에 대한 가치와 인식의 부족함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또 문화예술 분야의 장르 편향이 아주 심합니다. 예를 들면 축제의 공간에서 트롯트에 치중하고 아리랑은 소홀히 하는 것이지요. 이제 아리랑의 가치 회복과 리더와 관련자들이 균형감각을 유지하고 예산의 편중 지양과 아리랑축제의 쥐꼬리 예산을 해소해야 합니다. 셋째, 아리랑축제 주관 단체를 한 곳에 고정하여 안일, 나태로 변화를 추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정체성과 전통을 지키면서 시대에 부합하는 프로그램이 미흡한 것도 문제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축제 주관단체를 공모제로 전환하고 예산하마인 셀럽형 축제를 지양하고, 주민이 주체가 되는 축제로 전환해야 합니다. 그리고 실내 공연 위주의 축제에서 야외 공연(실제적 아리랑고개=문경새재)으로 전환해야 하고, 지역 내 모든 아리랑 단체 및 전문가가 모인 ‘아리랑축제추진위원회’를 구성해야 합니다. Q: 귀 단체의 새해 역점 사업은? A: 변화를 추구하면서 ‘찾아가는 아리랑학교’를 지속해서 추진할 것입니다. 그 일환으로 울릉도와 독도를 찾아가서 ‘독도는 한국 땅’이다. ‘근대 아리랑 시원'은 문경새재아리랑이다. ’문경새재는 실제적 아리랑고개’란 깃발 아래 '제3회 문경새재아리랑 공연과 문경아리랑 알리기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독도를 가는 여정에서 거리에서 '문경새재아리랑 버스킹'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전국 지역 아리랑답사, 전국아리랑경창대회 참가, 제4회사할린아리랑축제 참가는 계속 이어지는 아도위의 여정입니다. 아도위 자체 사업의 일환으로 문경새재아리랑을 한 사람에게라도 더 알리기 위해 ‘관광객과 함께하는 '아리랑 버스킹' 공연을 관광 시즌에 문경새재에서 열 계획입니다. 공동체 결속에 기여하는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을 통해 회원들의 친목 도모와 역량 강화를 더욱 강화하겠습니다. Q: 기타 하시고 싶은 말씀은? A: 우리 아도위는 ’문경새재는 실제적 아리랑고개’라는 역사적 사실과 명실공히 ‘아리랑 도시 문경’이란 이름이 빛나기를 바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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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아리랑제’, 가능성 확인되었다‘제2회 동두천아리랑제’가 지난 25일 오후 5시 시민회관 공연장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동두천아리랑보존회가 호국보훈의 달에 마련한 625전쟁 정전 70주년 기념하는 동두천아리랑제이다. 토속아리랑 '이담어러리타령' 8수, 창작아리랑 '동두천아리랑' 10수.... 2곡이 발표 되었다. 동두천에는 전래되는 어러리(아라리)와 본조아리랑 선율이 불려진 것이다. 이 아리랑을 유은서 회장이 아리랑학회 자문을 받고 현지 답사를 병행하여 발굴하고 복원하여 동두천 시민들에게 지난해 제1회 동두천아리랑제에서 알렸다.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 등재이후 유은서 회장은 아리랑학회에서 동두천에도 아라리가 불려졌다는 학술적 근거를 가지고 경로당을 찾아서 발굴작업을 수행했던 것이다. 유회장은 경기북부 지역에서 30여 년간 국악 활동을 하면서 북한강 수계를 따라서 불려지는 포천어러리, 연천어러리(아라리) 등에 주목했다. 이후 '경기아리랑에 관한 연구'로 국민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동두천 관내 많은 경로당을 찾아가며 귀담아 들었던 아라리를 정리하였고, 8년 전 동두천지역 어르신들로부터 이담이라는 옛 지명이 담긴 이담어러리 30수를 찾았다.이렇게 동두천에도 향토민요인 이담어러리타령과 아리랑이 채록되었다. 현재 동두천아리랑보존회에서 향토민요 ‘이담어러리타령’이 전수되고 있다. 이담어러리타령 (소리:유은서/채록:기미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나를넘겨주게 아리랑 고개는 열두고개 아리랑 고개로 날만 넘겨주게 올라가는 신감사야 내려오는 구감사야 구관이 명관이라고 말 전하거라 내가 넘어가는 고개는 한 고개라 우리 님 고개는 열두 고개 이담면 흐르는 물을 안고 도는데 우리집 저 멍텅구린 날 안고 돌줄 모른다 해는 지는데 갓을 쓰고 어디를 가오 첩의 집에 가거들랑 나 죽는 꼴 보고 가소 앞집의 처녀는 시집을 가는데 뒷집의 총각은 목메러 간다 여보게 총각아 목메러 가지 말고 이내몸 시집간데로 몸살러 오게 아리랑사(史)에서 6.25전쟁과 동두천은 깊은 관계가 있다. 주한 미군 제7사단가 '아리랑', 안흥리 '아리랑다리', 동두천 위안부 모임 '아리랑'이다. 1953년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동두천 보산리에 주둔한 주한 미군 (캠프 케이시)제7사단가가 '아리랑'이다. 특히 동두천 양공주로 불린 위안부들의 모임도 '아리랑'이고, 1964년 3월 10일 준공이 된 주한 미군 제7사단 장병들이 지어준 '아리랑다리'이다. 기록에 의하면 아리랑다리는 "64년 3월 10일 경기도 양주군 동두천읍 안흥리에 주한 미 제7사단 장병들이 손수 지었다. 제7사단장 그레이 소장이 양주 군수에게 '아리랑다리'를 지어서 인계했다. 폭 2m, 길이 120m로 미국과 한국의 굳은 우정을 기억하기 위해 아리랑다리라고 지었다"(대한뉴스 제 460호)라고 한다. 당시 동두천에서는 2만 6천명이나 되는 주한 미군 제7사단의 단가 아리랑이 대유행이었다고 한다. 미군들과 주민들이 만나면 손 붙잡고 아리랑을 자주 불렀다고 한다. 혹자는 출렁거려서 아리랑다리라고 불려졌다고 한다. 당시 미제 통조림 깡통이 줄줄이 매달려 있어서 '깡통다리'라고도 불려졌다고 한다. 이렇게 서양속담에도 "사랑받는 아이는 이름도 많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1967년에 '아리랑다리'라는 영화로도 나왔다. 그런데 1972년 노후한 아리랑다리를 헐고 현재는 새로운 다리를 짓고서 안흥교라는 이름을 부쳤다. 지난 6일 동두천아리랑보존회원들과 함께한 동두천아리랑답사에서 아리랑학회 기미양 연구이사는 "이러한 역사적 의미에서 관내 역사 유래에 대한 지명이나 시설을 적극 발굴하여 안흥교를 다시 아리랑다리로 복원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당시 아리랑다리를 지어주고 1971년 3월 2만명의 미군들이 철수하면서 제7사단가로 불린 아리랑을 미국으로 돌아가서 가족들에게 전해 주었다고 한다. "코리아라는 나라는 전쟁 페허 속에서도 남녀노소가 모였다 하면 아리랑을 부르면서 고난을 이겨내게 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고 설명하면서.....(주한 미군 제7사단에 3대가 복무한 마이클람부라우 박사(손자) 증언) 당시 동두천은 지나가는 개들도 입에 파란 달러를 물고 다닌다고 했다. 그만큼 급작스럽게 자본 집중과 유입으로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1950년 전쟁이후 동두천이야말로 아리랑이 가장 많이 불려진 지역이기도 하다. 군가로 불린 아리랑은 자연스럽게 미군들과 위안부들에 의해 불려져서 미국으로 건너가서 세계적 뮤직션들이 아리랑 음반을 발매하고, 미국 동포들까지도 아리랑을 애국가처럼 불렀다. 지금도 6월 보훈의 달 뉴스에서 한국을 다시 찾는 미군 참전용사들은 의례적으로 당시를 기억하며 아리랑을 부르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유은서 회장은 "새로 작창한 동두천아리랑에는 동두천 미군 기지촌의 애환이 담겨 있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반 강제동원이나 속여서 끌려온 어린 여인들의 고귀한 희생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 만들었다. 그들의 한을 아리랑으로 정화하고 치유하시기를 바라며...."라고 설명하면서 어느새 울컥 눈물을 흘렸다. 옆에 있던 사람들의 눈에도 함께 눈물이 고였다. 작년에서부터 그분들을 무대에 모시려고 수차례 청을 드렸는데 아직까지는 만나주기를 꺼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해자는 세상인데...아직까지 그분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보존회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희생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오늘을 동두천아리랑제 개최일로 정례화 하기로 하였다. 식전행사로 풍물패 밝달이 지신밟기와 풍악을 울려 신명과 흥을 올렸다. 이어 동두천에서 전래되고 있는 향토아리랑 이담어러리타령, 창작아리랑 동두천아리랑이 첫 막을 열었다. 동두천아리랑 (소리:유은서/채록:기미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넘어간다(후렴) 우리낭군 먼동이 트면/모랫말가고요 아낙네들 신천물/빨래터에서 놀고요 저기가는 기차는/검은연기만 나고 이내가슴 타는데도/검은연기가 나네 동산올라 구경하니/길가는행인왜모르나 천하일색 나하나와/놀다가지못하고 고추당추 맵다해도/시집같이나 매울소냐 못살겠네 영죽겠네/이내시집은못살겠네 자재암 풍경소리는/ 바람따라 울리고 소요산 공주봉에는/ 바람소리 좋구요 만경창파방을삼고/연화수다가 옷을입고 이리떠도 둘이나둥둥/저리떠도 둘이쌍쌍 꽃이야 곱다마는/가지 높아서 못꺾었나 꽃은 꺾어/머리에 꽂고/잎은흝어다 입에물고 미군부대 앞마당에는/민들레꽃 고운데 꽃답던 이내청춘/어느새 시들어졌네 아리랑다리는 깡통강통/깡통다리라네 아리랑다리는 출렁출렁/출렁다리라네 동두천아리랑보존회 유은서 회장과 회원들이 지난해 동안 갈고 닦은 가량을 펼쳤다. 2019년 함양산삼엑스포에서 음반으로 발매된 '황석산아리랑'(작곡:양평수, 소리:유은서)도 함께 선보였다. 한국무용 '살풀이'(이해영예술단), 변검, 동동구루무(송해문화예술진흥회), 한국무용 '강원도아리랑'(늘춤무용단), 인형극 (정승재)이 펼쳐졌다. 이어서 (사)왕십리아리랑보존회 이혜솔 이사장과 이병일(특별회원), 회원들이 소극으로 꾸며서 배역을 맡고 들려준 왕십리아리랑과 사할린아리랑을 생생한 감동으로 선사하여 많은 박수를 받았다. 따뜻한 조선을 놔두고/사할린에는 왜왔나 왜왔나 풍파 사나운 바다를 건너/ 한많은 남화태 징용왔네 안성아리랑보존회 조명숙(안성경서도잡가 보유자)과 회원들이 1911년에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안성아리랑을 선사했다. 조명숙 명인은 안성권번이신 어머니를 따라서 70 평생 노래만 불렀다. 뛰어난 공력으로 무대를 신명나고 신나게 만들어서 초청 단체 중 가장 많은 박수와 관심을 받았다. 다음날 아침 관객으로 오신 귀명창들에게 전화가 왔다. '귀한 소리 들었다고" 동두천 시민들에게 서울경기 지역과 사할린에서 향유하고 있는 아리랑들을 선보였다. 안성아리랑, 동두천아리랑, 왕십리아리랑, 사할린아리랑과 함께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선사했다. 총 10개 단체가 함께 무대에 올랐다. 이날 박형덕 동두천시장, 김승호 시의회 의장을 비롯해 한국국악협회 동두천지회 김경수 지회장, 김성보 대한노인회 동두천시지회장, 동두천여성단체협의회 윤한옥 회장, 동두천농업협동조합 목현균 조합장, 동두천시종합자원봉사센터 형남선 센터장, 안성아리랑보존회 조명숙 회장, ㈔왕십리아리랑보존회 이혜솔 회장, 이무성 화백, (주)국악신문 관계자, 전 사할린한국교육원 이병일 원장 등 300여 명의 관객들이 함께했다. 박형덕 동두천시장은 시민들에게 "동두천아리랑이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전했다. 김승호 동두천시의회 의장은 "아리랑은 우리 한민족의 정체성과 아이덴티티를 대표하는 인자"라고 전했다. 대한노인회동두천지회 김승호 회장은 "이제 두 돐을 넘은 동두천아리랑의 발전을 위해서는 오랫동안 지역 전통문화 창달을 위해 온 김경수 동두천국악협회장의 배려와 지원을 부탁한다"고 전했다. 한편 동두천 전통문화 발전에 힘쓰고 있는 한국국악협회 동두천지부 김경수 지부장은 "다른 지역에 비해 늦었지만 동두천 지역 아리랑의 발굴과 복원작업을 통해 동두천의 역사성을 '동두천아리랑'으로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동두천아리랑보존회는 지난 2012년 12월에 세계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아리랑과 함께 향토아리랑 동두천아리랑의 위상을 널리 알리고, 아리랑을 통해서 지역문화 공동체 결속에 기여하는데 목적을 둔 비영리 문화단체다. 또한 아리랑 3대 정신(저항, 대동, 상생)을 계승한다. 지난 12월 등재 10년을 기념하기 위해 정선에 세운 인류무형문화유산아리랑비에 동두천아리랑이 새겨져 있다. 유은서 회장은 "이번 동두전아리랑제를 위해 동두천아리랑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아리랑답사를 회원들과 수행하면서 더욱 아리랑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 내년에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주제의식을 구축하고, 스토리텔링 작업으로 다듬어서 소극으로 동두천아리랑을 올려보고자 한다."라고 전했다. 제2회 동두천아리랑제는 동두천아리랑보존회가 주관하고 동두천시, 동두천시의회, 전국아리랑공연예술연합회, (주)국악신문, 동두천예총, 대한노인회동두천지회, 동두천농업협동조합이 후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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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아리랑의 전승 과정과 박소정 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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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아리랑 도시 문경”에 뿌리 내린 아도위이만유/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아도위) 위원장 문경시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아리랑 도시”를 선포한 지방자치단체다. 아리랑은 한국을 대표하는 민요로서 우리 민초들이 희로애락을 느낄 때 부르는 노래이며 제2의 국가(國歌)와도 같은 민족의 노래이다. 우리 문경에도 오랜 세월 동안 불리어 왔던 "문경새재아리랑”이 있다. 이 아리랑이 ‘근대 아리랑의 시원’이며 실제적 아리랑고개가 "문경새재라”라고 하면 무슨 소리를 하나? 의아스럽게 생각하실 분이 계시겠지만, 이 주장에 대해 근래 학계나 민요학계에서 점차 인정하는 추세이다. 문경새재아리랑은 길 위의 노래, 고개의 소리로서 백두대간을 따라 출현한 메나리토리 ‘아라리’로부터 시작되었고 토속민요 ‘아라리’가 아리랑으로 변환되는 변곡점에 있었으며 아리랑이 조선 팔도로 널리 확산하게 된 그 뿌리를 찾아가면 근대 아리랑의 종주격인 문경새재아리랑이 있다. 아리랑과 불가분의 관계인 1865년 흥선 대원군의 경복궁 중수와 문경새재와 물박달나무와 문경새재소리가 얽힌 역사, 그리고 1912년 문경지방 초등학교 교사에 의해 총독부에 보고 기록된 "문경풍년아리랑”은 아라리가 아리랑으로 바뀐 최초의 기록이다. 이런 흐름에 영향받아 1896년 역사 이래 최초로 아리랑 악보로 쓰이고 해외에 알려진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 다 나간다.”라는 사설이 들어 있는 헐버트 아리랑의 발표와 1926년 큰 인기를 끈 나운규의 무성영화 "아리랑”의 주제곡이 기폭제가 되었고 1930년 영남의 30개 시군을 대상으로 조사, 정리한 대구 출신 국학자 이재욱이 쓴 ‘영남전래민요집’이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진 이후 문경새재아리랑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러한 전통과 역사성 위에 송옥자 회장이 2001년부터 "문경새재아리랑보존회”을 창립하여 지금까지 전승 및 보급활동을 하고 있고, 1980년에 설립한 사단법인 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이사장과 아리랑학회 기미양 연구이사의 ‘문경새재아리랑의 역사적, 민요사적 연구’를 거듭한 연구 성과에 의해 그 사실들과 중요성이 점차 입증되어 가고 있다. 아리랑이 2012년 12월 5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고 2014년 11월 27일 북한도 "아리랑 민요”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였고 이어서 2015년 9월 22일 국가무형문화재 제129호로 지정하였다. 이에 부응한 문경시는 위와 같은 역사적 근거를 바탕으로 2015년 12월 1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문경, 세상의 모든 아리랑을 품다”라는 주제로 "아리랑도시 문경”을 선포하였다. 이에 발맞춰 "아리랑도시 문경”에 걸맞은 시민 활동이 필요하다는 뜻을 가진 소수 시민이 발의한 후, 다수가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어 아리랑의 조사, 연구, 발굴, 보존, 전승, 보급, 교육, 공연, 홍보를 통해 아리랑 문화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목적으로 2017년 6월 21일 발기인회, 2017년 6월 29일 순수 민간인들로 구성된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 창립총회 및 기념식”을 개최하였다. 아울러 우리 지역 아리랑만이 최고이며 중요하다는 편협된 사고에서 벗어나 ‘아리랑은 하나이면서 여럿이고, 같으면서 다르고, 옛것이면서 오늘의 것이고, 우리의 것이면서 세계의 것’이라는 아리랑 속성을 일반화하기 위해 모든 아리랑을 인정, 존중한다는 의미가 포함된 그때 발표한 선언문은 아래와 같다.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 선언문 아리랑은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가장 잘 상징하는 한민족공동체 문화의 정수임을 다시 한번 더 자각한다./ 이와 같은 아리랑이 우리나라 지역마다 전승되어 왔고, 이를 보존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 왔음을 확인한다. 문경시에는 아리랑고개인 문경새재가 실존하고, "문경새재 물박달나무 홍두깨방망이로 다 나간다.”라는 사설이 여러 지역 아리랑에서 불리는 등 근대 아리랑의 생성과 대중화에 큰 역할을 했던 문경새재아리랑이 있어 아리랑 도시로서의 요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음을 인정한다. 이런 바탕 위에 2015년 12월 13일 문경시가 ‘아리랑 도시’를 선포한 것은 매우 바람직하며, 이를 높이 평가한다. 이와 같은 사실과 문경시의 "아리랑 도시” 연장선상에서 문경시민들의 자발적 아리랑 모임인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를 결성하기 위해 9인이 발기인회를 결성하고 추진한 결과 오늘 창립총회를 개최하며 아래와 같이 선언한다. -. 우리나라 모든 아리랑을 존중한다. -. 우리나라 모든 아리랑이 문경에서 역량을 펼칠 수 있기를 희망한다. -. 아리랑 도시 문경의 위상을 높이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여야 한다. -. 아리랑 관련 사업에 문경시민이 광범위하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 문경새재아리랑 전승자를 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야 한다. -. 문경새재아리랑 전승, 공연, 교육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 아리랑 관련 콘텐츠를 꾸준히 개발하여야 한다. 2017년 6월 29일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 위원 일동 아도위는 창립 이후 창의적이고 시대에 부합하고 현실적인 다양한 활동을 지속해서 추진하였다. 첫번째 사업으로 "아리랑은 문경시민의 기본 교양과목이다”라는 의미를 담고 명실공히 "아리랑 도시 문경”이 되려면 8만 시민이 우리 아리랑을 제대로 알고 불러야 한다. 문경시민들이 아리랑을 잘 부르지 못하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하여 "아리랑 부르기 운동”을 전개하였다. 우선 그 대상을 영향력이 큰 기관단체인 문경시, 문경시의회, 문경교육청, 문경문화원, 문경예총, 각 축제추진위원장, 읍면동장, 각급학교장, 각 사회・문화・예술 단체장에게 공문을 발송하여 각종 축제, 행사, 교육, 회의 때에 "문경새재아리랑” 공연과 학교에서는 특활 계획 시 아리랑이 포함된 프로그램을 필수적으로 편성 시행해 줄 것을 당부, 호소하는 협조 공문을 발송하였다. 이후 아도위의 주요 활동 상황은 아래와 같다. - 2017년 11월 6일 문경새재아리랑제 workshop 진행 * 주제 : 아리랑, 문경에 다 모이다 (위원장: 좌장) - 2017년 2018년 문경문화원 주관 "아리랑학교” 운영 력-아리랑답사 주관 - 2018년 7월 30일 "제1회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 학술토론회”개최 * 주제 : 문경새재아리랑 정체성과 위상 정립 - 2017년 9월∼2018년 3월 문경새재아리랑 "기준 악보” 제정에 자문단으로 참여 - 2018년 12월 10일∼11일 "디아스포라 아리랑제” 참여 * 고유제(최초), 가사 짓기 대회(부활), 평가보고회(최초) 주관 - 2018년 아리랑답사 및 교류-정선, 진도, 밀양 - 2019년 전국 최초로 시행한"찾아가는 아리랑학교” 주관/ 14회 402명 - 2019년 유명 관광지 "찾아가는 공연” 주관 - 2019년 위원 자질 함양을 위한 자체 "아리랑 경창대회” 개최 - 2019년 "서울아리랑페스티벌”참여(36명)/ 문경새재아리랑 홍보 - 2019년 "의병의 혼불, 아리랑” 제12회 문경새재아리랑제 참여 * 고유제, 가사 짓기 대회, 평가보고회 주관 - 2020년 7월 14일 "코로나아리랑” 발표회/ (장소:중앙공원 야외공연장) - 2020년 11월 5일 코로나아리랑, 조선일보 100주년 기념 타임캡슐 봉인 (문경새재아리랑 악보집, 아리랑영상물, 아도위 활동사진) - 2020년 11월 7일 ‘코로나아리랑’ 공연/ 에코랄라아리랑페스티발 초청공연 - 2021년 "찾아가는 아리랑학교” / 5회, (참가자 총 560명) - 기타 : 관내 외 아리랑 전승, 보급, 행사 참여 및 지원, 후원 - 수상 : 2019년 10월 2일 문경시장상, 2019년 11월 18일 경북도지사상 문경새재아리랑은 어느 특정인이 부정하려고 해도 부정할 수 없는 문경의 정체성을 지닌 문화이며 역사다. 올해가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1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에 아도위는 다시 한번 결의를 다지며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아리랑 도시 문경시민으로서 묵묵히 할 일을 하고 자긍심을 가지고 활동할 것이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기본적이고 정례적인 사업들은 내실과 변화를 추구하면서 새롭고 획기적인 사업도 기획 추진하고자 한다. 근래 본 단체는 국악인과 지역 가수들이 다수 합류하여 가단(歌壇)을 형성할 정도로 활기를 띠고 있다. 이에 우리 45명 아도위 위원들은 아리랑 도시 문경에서 ‘아리랑꽃’이 활짝 피어나는 그날까지 매진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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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한 지리학자의 아리랑 기행' 저자 이정면 박사 별세재미 지리학자 이정면(李廷冕) 유타대 명예교수가 지난 8일(현지 시각) 96세의 일기로 미국 유타주에서 별세했다. 서울대 지리교육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2년 유타대에 자리 잡은 뒤 인구지리학과 미 중서부로 이주한 한인 노동자 등을 연구하며 말레이시아·일본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2002년 퇴임후 아리랑에 심취, 극내에서 생활하며 전국 답사한 뒤 2007년 딥사기 '한 지리힉자의 아리랑 기행'을 발간했다. 이후 북한을 방문하고 한국인 이주지역을 답사하여 인문지리학의 영역을 넓혔다. 현지 소식통에 의하면 화장 일정이 확정되지 않아 장례 일정이 잡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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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킹(Busking) 공연, 영산제에 오른 연꽃아리랑지난 주말 27일 홍천 영산제 무대에서 ‘연꽃아리랑 버스킹’이 펼쳐졌다. 사단법인 왕십리아리랑보존회 이혜솔 회장(국가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이수자)과 회원들이 27일 홍천 봉찬문화원 산사를 찾아가서 영산제 무대에서 찾아가는 버스킹(Busking)공연 ‘연꽃아리랑’을 펼치고 왔다. 코로나 이후 작년 3월부터 아리랑 전승 지역을 찾아가서 버스킹 공연을 펼치고 있다. 이번 연꽃아리랑 버스킹 공연을 하게 된 배경은 지난 13일 독도를 찾아가서 버스킹 공연 '독도아리랑' 무대가 러브콜을 받고 이어진 공연이다. 독도에 입도해서 펼친 버스킹 공연에서 관광객들의 추임새와 박수를 받으며 아리랑 후렴을 주고 받는 즉흥 무대가 되었다. 공연을 마치고 관광객으로 온 시민들과 아리랑 이야기를 나누는데, 한 주지스님이 다가와서 얼마 남지 않은 영산제 공연에 아리랑을 불러달라는 요청을 받아서 준비한 공연이다. 이회장은 "바라춤같은 불교음악이 연주되는 영산제 무대라고 해서 저 멀리 기억 속에 있는 연꽃아리랑을 꺼내 보았다. 수 년전 돌아가신 어머님을 위해 만든 아리랑이었다. 불심이 깊으신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위해 지어 부른 아리랑이다"라며 두 분을 깊게 감았다. "어머니가 긴 병석에서 늘 즐겨 부르시던 아리랑 중 ”내가 죽어지면 움이되나 싹이 되나 내 새끼들 보고 싶어 어쩌나”라고 하신 구절이 생각이 나서 부쳐서 지어 보았다. 그래서 어머니의 왕생극락을 빌어보자는 마음으로 만든 아리랑을 이번 기회에 알려보자는 뜻을 비추었다. 돌아오는 울릉도 뱃길에서 회원들과 논의를 하고 나서 결정을 했다. 서울로 돌아와서 다음날부터 2주 동안 회원들이 매일 나와서 전통 춤사위를 연습하여 구성한 퍼포먼스를 준비했다. 우리는 일치감치 코로나 백신을 모두 접종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새롭게 준비한 핑크빛이 도는 한복에 연꽃을 들고 불심을 담아서 경건한 마음으로 아리랑을 불렀다. 이회장이 작사하고 본조아리랑 선율로 작창한 연꽃아리랑 가사는 다음과 같다. 연꽃아리랑 작사 작창:이혜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 흙탕물 진흙속에 묻어놔도 붉은꽃 피어 나는구나 연꽃위에 피어나신 부처님 연꽃타고 왕생극락 하시었네 사바세계 백팔번뇌 던지시고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한번가면 움이되나 꽃이되나 연꽃피워 다시한번 오고싶네 울어무이 아버지 연등달고 부처님께 왕생극락 비옵나이다 회원들은 "아리랑은 두 줄 가사에 후렴이 붙은 쉬운 형식이이어서 금방 따라서 부르게 되니 쉽게 외워지는 노래다. 부모님 생각하면서 부르니까 절로 외워지네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 이 연꽃아리랑을 배울때 우리 모두 부모님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났습니다.”라며 이제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부모님을 그리는 서로의 마음과 마음을 나누었다. 주지스님과 관객들도 "내년에도 와서 함께 합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불러주세요. 나무아미타불 "라며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열창을 한 회원들의 두 손을 잡아주었다. 이혜솔 회장은 ‘2021아리랑학교’가 주최하고 있는 경기지역 '아리랑고개'를 찾아가는 아리랑답사에 함께 참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아리랑버스킹 공연을 함께 병행하기로 하고 연습을 하고 있다. 한편 왕십리아리랑보존회는 전 세계를 멈추게 한 코로나를 아리랑으로 극복하자는 의미에서 새로 만든 창작아리랑 ‘아리랑코로나’를 널리 알리기 위해 지난 해 독도를 방문했다. '독도에서 제주까지 아리랑코로나'라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6월 2차 독도아리랑버스킹 공연에는 새로 만든 창작아리랑인 '독도아리랑'을 관광객들과 공유했다. 코로나 이후에도 계속 전승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아리랑은 하나이면서 여럿이라는 것이다. 시대의 노래 아리랑. 창작아리랑이 새롭게 나오고 있다. 한 개인 전승자에 의해 새롭게 불려진 '아리랑코로나'와 '독도아리랑'에 이어 '연꽃아리랑'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 아리랑에는 각각의 시대가 요청하는 진심어린 사연이 담겨져 있다. 민속학에서 "민속문화는 현재 향유하지 않는 사람이 없으면 그 존재는 종목만 남아있고 가짜민속이 된다'라고 한다. 그래서 전승단체와 전승자는 가장 중요한 민속문화의 키워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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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은이성지 아리랑노래비를 찾아서(사)왕십리아리랑보존회 이혜솔 회장은 아리랑학회가 주최한 경기지역 '아리랑고개'를 찾아가는 '아리랑답사'를 위해 길을 떠났다. 월간 잡지 ’길벗‘에 실린 ’천주교와 아리랑(기찬숙의 아리랑칼럼)‘을 읽고 나서, 필자에게 용인시 남곡리 아리랑고개에 대한 답사 안내 및 강연요청을 하고 회원들과 함께 길을 나섰다. 이회장은 지난 주 가평아리랑답사에서 의병사에서 마지막 격전지 보납산(법업산)을 찾았다. 보납산은 남으로부터 쫓겨온 의병들이 이승에서 넘었던 마지막 고개, 아리랑고개인 것이다. 이번 주는 용인 지역 아리랑고개를 넘어갔다.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에는 ‘은이(隱里) 성지’가 있다. 천주교회의 첫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사목한 본당이며 순교 후 유체의 이장 경로이기도 하다. ‘은이’라는 지명은 ‘숨어 있는 동네’라는 뜻으로 천주교 박해 시기 숨어 살던 신자들의 교우촌이었다. 은지성지 성지순례길은 총 15. 4km, 5시간 30분이 걸리는 거리인데, 여기에는 하나님에게 다가가는 믿음, 소망, 사랑을 뜻하는 ‘삼덕(三德)의 길’이라는 세개의 고갯길이 있다. 세 개의 덕(德)있는 고개라는 뜻으로, 하나는 신덕(信德)고개인 ‘별미 고개’, 둘은 망덕(望德)고개인 ‘해실이 고개’, 셋은 애덕(愛德)고개인 ‘거문정 고개’길을 말한다. 오늘에도 인적이 드믄 산길이 포함되어 있는데, ‘120 나무계단 길’과 김대건 신부의 유체 이장 때 호랑이도 물러나 길을 열어주었다는 ‘기적의 길’도 있다. 그런데 첫 번째 신덕고개 ‘별미고개’에는 뜻밖에도 ‘아리랑’비(碑)가 세워져 있다. 이는 천주교 초기에 아리랑이 신앙공동체에서도 불렸음을 추정하게 하는 것이다. 공동체 결속과 포교를 위해 민중의 노래에 신앙심을 얹어 불렀다고 본다. 이 비에 새겨진 가사가 당시의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그만한 유래를 담보했기에 비로 새겨졌다고 보게 된다. 아리랑노래비의 가사는 김진용 작사의 전체 8절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리랑 주님을 버리고 가시는 님은/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후렴구) 천진암 강악회 진리탐구/반만년 어둠속에 동이 트네 청천 하늘에 잔별도많고/천주교 이백년 박해도 많다 심한박해 모진고충 이겨내고/참된신앙 물려주신 순교자여 금자로 발길재는 천사를 보라/격려하며 순교의길 가신님이여 희광이칼 여덟번째 목숨바치고/천당영복 면류관을 쓰신님이여 순교유해 쌓고쌓여 주춧돌되고/순교선혈 흘러흘러 밑거름됐네 한알의 밀알이 이백년썩어/오백만의 열매가 주님찬미해 제1절에서는 상하 계층 없이 사방팔방의 모두가 알고 있는 아리랑의 대표사설을 통해 곡조를 제시했다. 2절은 광주 퇴촌의 천진암(天眞菴)에서의 강학회(1771년 자산 정약전 3형제와 만천 이승훈 등의 천주교리 연구모임) 사실을 말하여 천주교 역사를 제시했다. 3절은 1791년 신해박해로부터 네 차례의 박해를 통해 천주교의 수난사를 나타냈고, 4, 5절은 성스런 순교사를, 6~8절은 신앙 승리의 역사를 찬양했다. 이 가사 천체를 보면 3절과 8절에 ‘이백년’이 있어 1984년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으로 작사하여 노래비로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200주년을 기념하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한했고, 천주교 신약성서 자체 번역본을 발행하였으니, 이 아리랑 작사도 그만큼 의미를 두어 비로 세운 것이다. 당시 천주교 신자들의 굳은 신념이 뜨겁게 전해온다. 이회장과 회원들은 아리랑학회가 운영하는 아리랑학교에서 배포한 아리랑 가사를 사전에 받고 가창 연습을 해왔다. 1시간을 걸어서 가쁜 호흡으로 아리랑고개에 오르자. 경건하고 신성한 바람이 일어나서 흐르는 땀을 식혀주었다. 우선 목숨을 걸고 이 고개를 넘어갔던 순교자와 신도들을 위해서 술 한잔씩 부어서 올리고. 일동 묵념을 하였다. 전국에 곳곳에 있는 아리랑고개의 역사성과 은이성지 아리랑고개의 유래에 대한 짦은 해설이 끝나자 이혜솔 회장과 회원들이 아리랑노래비에 새겨진 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하자 3절에서부터 모두 눈물이 쏟아져서 눈물의 아리랑 공간이 되었다. 종교적 신념을 가진 자들이 받았던 억압과 고난이 뜨겁게 전해진다. 이회장은 "코로나로 인해 5월 서울과 제주 지역 아리랑 행사가 취소가 되었다. 그래서 이참에 경기 서울지역 아리랑고개와 아리랑역사 유적지를 답사하고자 한다. 실제적 아리랑고개 '문경새재'에 이어서.......찾아와보니, 아리랑은 '고개의 노래'라는 것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무대에서 이러한 감정을 관객들에게 전해지도록 노력하겠다. 특히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은 역사의 노래이다. 부르는 이도 왜 아리랑을 불렀는지는 알고 불러야 한다라는 취지로 아리랑학회 아리랑고개답사에 동참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회장은 다음주 안성아리랑보존회가 주관하는 안성의 아리랑고개를 찾아가는 답사에도 함께 할 계획이다. 전국의 아리랑고개의 유래를 살피면 천주교와 관련된 곳은 아직까지는 이곳이 유일하다. 그렇다면 한국 천주교 역사와 아리랑은 어떻게 만났을까? 현재 밝혀진 아리랑 자료로는 1823년(道光 3년) 청석거사(靑石居士) 필사본 ‘佛說明堂아리랑’이란 기록물에서 1839년 천주교 기해박해 전후에 불렸으리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 문헌자료는 민간신앙에서 수용한 일종의 무경(巫經)으로 "제석천황 관제멸 대범천황 오액명/아라리 사라리 아리사리 아리랑” 같은 사설에서 알 수 있듯이 수명과 복록을 기원하며 아리랑 후렴을 사용하였다. 이 시기 아리랑의 보편성을 이용하여 무경의 보급을 용이하게 할 방편으로 수용한 것이다. 천주교 교인들도 우리의 전통 시가인 가사체(歌辭體)를 수용하여 ‘천주가사’(天主歌辭)를 지어 교리를 전파했듯이, 민요 아리랑의 형식도 수용했을 것은 분명하다. 천주교인들이 불교 사찰인 천진암을 거점으로 한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전통문화를 수용하여 교리전파에 활용하는 것은 포교의 한 방식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초기 교회사 자료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이 확인되기도 했다. 천주교 초기 인물 이승훈이 아리랑을 수용한 사실에서, 이는 초기 천주교 신앙공동체에서도 아리랑이 포교를 위해 향유되었고, 이러한 맥락에서 200년 기념으로 새로운 아리랑이 창작되어 비로 세워지게 되었음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정조년간에 북경으로부터 들어온 서학(西學)은 단순한 학문으로 연구되다가 점차 뛰어난 진리를 깨달음에 이르러 하나의 실천학으로 받아들여졌다. 마침내 드디어 그리스도 신앙으로 귀의(歸依)해 가게 하였다. 이 때 민중의 노래 아리랑도 향유되었다. 어떤 공동체에게도 아리랑은 결속력을 유지시키는 기능을 획득하게 하는 노래의 힘을 가지고 있기에. 누구나 만날 수밖에 없는 노래인 것이다.(www.arirangso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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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br> ‘2005’의 아리랑<3><br>강원도아리랑의 존재와 전승실태강원지역 아리랑의 전반을 공식적인 보고서로 제시한 것은 지난 회의 ‘서울경기지역 아리랑 6종’과 같이 최초이다. 보고자는 강등학(강릉대학교)교수이다. ‘강원도 아리랑의 존재양상과 문화적 전래’와 ‘강원도의 아리랑 전승실태’를 중심으로 보고되었는데, 강원도 토속아리랑을 (긴)아라리, 역음아라리, 잦은아라리 3종으로 규정하였다. 아라리와 엮음아라리는 전자의 가락으로 되돌아오고 부수적으로 불려 분명한 변주 관계로 보지만, 잦은아라리는 독립적으로 불리는 별개의 관계로 보았다. 이들의 분포 상황은 강원도뿐만 아니라 경기, 충청, 경상, 전북에까지 광역적이고, 그 분포의 밀집상은 아라리가 가장 넓고, 잦은아라리, 엮음아라리 순임을 확인하였다. 현재 제도적 관리는 아라리와 엮음아라리는 강원무형문화재 제1호 ‘강원도아리랑’으로, 잦은아라리는 제 5호 ‘강릉학산옥독떼기 과장 모심는 소리’로 지정되어있다. 보고서는 이 강원도 토속아리랑이 모든 아리랑의 본원적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첫 출현을 서울 긴아리랑, 이어서 잦은아리랑이라고 하고, 1926년 본조아리랑이 잦은아리랑에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긴아리랑이 잦은아리랑에 앞서 출현했다고 하는 것은 이보형("아리랑소리의 근원과 변천에 관한 음악적 연구”, 한국민요학회, 1997) 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오류이다. 김연갑, 최헌, 김경아의 연구에 의해 경복궁 중수를 계기로 대중에 의해 ‘문경소리’를 매개로 잦은아리랑이 출현했고, 이의 영향으로 좌창 전문음악인들이 잦은아리랑을 작창한 것임을 밝혔기 때문이다. 보고서 중 주목하는 내용은 다음 세 가지이다. 첫째는 아라리 분포의 지리적 환경 조건(산맥 분포)을 제시한 것이다. 즉, 토속 아라리의 분포가 강원도를 중심으로 경기도 동부와 남부, 충청북도, 충청남도 동부와 남부 등 중부지방의 서남쪽에 분포하고 있다는 전제이다. 이는 강원도 동쪽에 태백산맥이 종단하고 이로부터 광주산맥, 차령산맥, 소백산맥이 뻗은 것이 영향을 주었다는 주장으로, 소백산맥에서 다시 노령산맥이 갈라지면서 경기도, 충청남북도, 경상북도, 전라북도에 이르러 전파, 분포상을 형성했다고 한 것이다. 이를 주목하는 이유는 아라리의 분포가 태백산맥을 근간으로 한 산맥분포와 일치한다는 점이다. 이는 대립과 소통이 산맥을 통하여 이뤄짐으로서 문화적 감각이 에너지화 되어 부딪치는 곳에서 접변을 이룬 결과이다. 이에 따라 아라리가 처음 출현한 곳은 결국 태백산맥의 한 지역임을 입증해 준다는 사실에서다. 한편 이에 대해서는 2017년 필자가 안내하여 이뤄진 ‘지리학자와의 아리랑기행’(김연갑선생과 이정면 유타대 교수 외 7명)프로젝트에서 확인한 바가 있다. 두 번째 중요 내용은 아라리의 기능을 구체적으로 밝힌 점이다. 강원 토속민요로 자생장르로 전제한 아라리는 종류를 다양화하기 보다는 기능을 복합화 하는 특징을 갖는다는 것이다. 곧 아라리는 기능이 가장 많은 노래로 ‘나무하기’를 대표 기능으로 하고, ‘노해하기’, 모심기, 밭매기 순의 기능이라고 조사했다. 그리고 강원도에서는 ‘노래하기’가 가장 큰 기능인데, 지역을 벗어나면서 ‘나무하기’와 ‘모심기’ 기능으로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 양상은 아라리의 전파는 강원지역과 다르게 가창유희요 보다는 ‘나무하기’나 ‘모심는 소리’의 노동 기능으로 전파되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다음 세 번째는 아라리의 생태적 환경변화에 따른 성격변화상을 제시한 점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산간지역에서 들의 농사지역으로 전파되면 당연히 일의 성격에 따라 가창방식, 후렴, 사설의 형식과 내용이 바뀌게 된다. 산간 지역의 가창유희 자리나 밭농사에서는 거의 독창이나 윤창이지만 논농사인 모심기나 논매기에서는 다른 이들과 호흡을 맞춰야 함으로 선후창이나 윤창으로 부르게 된다. 선후창은 후렴이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성격을 분명히 한다. 한편 이 후렴의 여부는 ‘정선아리랑 비문’에서 아라리가 후렴을 수용한 것은 경복궁 중수 이후라고 한 사실과 부합한다는 점에서 주목이 되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폈듯이 강원지역 아라리는 모든 아리랑의 근원적 배경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창 방식이나 후렴의 여부 등에서 다른 지역 아리랑과 다른 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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